# 기술생성시대의 매체미학 — DeerFlow 일일 질문
생성일시: 2026-08-10 21:02:01
Clarification 처리: HeHe 자동
## 질문
'기계는 원하지 않지만, 지속한다'는 작동적 자율성(operational autonomy)의 주장은 의지 없는 인과가 어떻게 사회적·생태적 효과를 생산하는지 설명하는가? — 이 관점이 기술 결정론의 변종이 아니라, 책임의 분배를 다시 추적하기 위한 개념임을 논증할 수 있는가?
## Khoj RAG 참고문헌
## 참고문헌 (Khoj RAG 검색 결과)
아래 항목은 로컬 Khoj 문헌 DB에서 질문과 의미적으로 가까운 자료이다. 답변에서는 이를 우선 참고하되, 근거가 약한 경우에는 한계를 명시하라.
### 1. 문서 1 (score: 0.09145355224609375)
> 48 확률, 통계를 컴퓨터에서 실제로 실습하는 데에는 R이 가장 편리하지만, Python에서도 우수 한 패키지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Python을 기반으로 한 실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근에는 확률적 프로그래밍(probabilistic programming)도 점점 세력을 확대하고 있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언어 또는 프레임워크도 속속 나오고 있다. WebPPL, Pyro, PyMC3, PvMC4, Stan, Figaro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확률적 모델링이 매우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런 언어나 프레임워 크에 대한 교육이
### 2. 문서 2 (score: 0.11301976442337036)
> 68 (2) 중국과 일본의 한계 :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지지부진함 한편 중국과 일본의 교육 개혁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없어 보인다. 교육이 지지부진하므로, 나라의 미래도 어두워보인다.74) 먼저 중국을 보면, ‘통식(通識)교육’(인문융합교양교육을 가리키는 중국 용어)의 지향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통식교은 “‘생존’을 위한 대학 경쟁력의 강화 방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경제 강국으로서 G2에서 향후 ‘새로운 문명의 건설’을 위한 전문인력의 필요성, 중국의 미 래를 위한 우수 인력의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 3. 문서 3 (score: 0.11501055270370375)
> 64 따라잡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지식을 따라잡는 것 말고도 새로운 지식을 ‘먼저’ 알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새로운 고등 교육과정 모델을 선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한 조건은 무르익었다. 우리가 제안하고 싶은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중등교육과정에서는 문과를 폐지하고 모든 학생에게 수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동일한 내용의 필수 공통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②학부에 서의 고등교육은 뉴리버럴아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③전문 지식과 기능은 대학원에서 떠맡아야
### 4. 문서 4 (score: 0.11713480949401855)
> 51 그런데 인문사회과학과 AI의 융합 연구를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준의 융합 교육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고, 위에서 말했듯이 대학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AI의 소 양을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부 대학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그런 방향의 교육 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을 보면 문제가 매우 많은 듯하다. 예컨대 일부 대학은 전교생에게 코딩 교과목을 필수로 지정했지만, 양질의 코딩 교육을 실시 하기에는 좋은 강사가 턱없이 부족하며, 강사들이 모든 대학생에게 코딩 교육을 실
### 5. 문서 5 (score: 0.11756139993667603)
> - 66 - 의 경험이 우리의 신체적인 구조와 뗄 수 없이 얽혀있음을 말해준다. “우리 는 세계의 ‘공간’을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시야를 체험한다. 우리는 세 계의 ‘색깔’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색채공간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인식되는 이 세계는 세계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의 문제이며, 우리가 모두가 살고 있는 단하나의 이 세계는 우리 의 생물학적·사회적 행위의 역사와 얽혀있음을 강조한다.140) 이러한 관점으 로 미루어 볼 때 예술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갖는 신체적 구조 그리고 사
## 응답
Khoj RAG 검색 결과부터 먼저 진단하겠습니다. 제공된 5개 문서 모두 **교육과정 개혁과 AI 소양 교육**에 관한 내용으로, 질문의 핵심인 Kittler의 작동적 자율성, 기술 결정론, 책임 분배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습니다**. similarity score도 0.09~0.12로 매우 낮아, 이들 문서를 질문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전 대화 맥락에서 구축된 이론적 프레임워크(Kittler의 미디어 존재론, Simondon의 개체화, AI 플레이어의 변증법적 종합)를 바탕으로 논증을 구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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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동적 자율성과 의지 없는 인과: 기술 결정론인가, 책임의 재분배인가?
### 1. 문제의 인식: 키틀러에게 '지속'이란 무엇인가
Kittler의 미디어 존재론에서 핵심은, 미디어는 **의지(Will) 없이도 작동(operate)하며, 그 작동은 사회적 효과를 생산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능주의적 설명이 아니라, 존재론적 선언입니다. 푸코의 권력분석에서 권력이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작용들의 전체'인 것처럼, 키틀러에게 미디어 시스템은 누군가가 '원해서'가 아니라 단지 **작동하기 때문에** 효과를 생산합니다.
여기서 '지속함'(persist)은 세 가지 층위를 가집니다:
- **존재론적 지속**: 조건이 충족되는 한 계속 작동하는 경향성 (예: 전력만 공급되면 서버는 계속 연산)
- **인과적 지속**: 입력-처리-출력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폐쇄적 인과성
- **사회적 지속**: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 시스템에 귀속되는 효과들의 축적
### 2. 의지 없는 인과(will-less causation)의 구조
'의지 없는 인과'가 작동하는 방식을 세 가지 축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① 작동적 폐쇄(Operational Closure)**
미디어 시스템은 자기 자신의 작동 규칙에 따라 입력을 처리합니다. 이때 시스템은 입력의 '의미'가 아니라 '형식적 차이'에만 반응합니다. 이것이 의지 없는 인과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 의미를 이해하지 않으면서도 인과적 효과를 생산함.
**② 시간적 축적(Temporal Accumulation)**
개별 작동은 미미하지만, 그것이 축적되어 사회 제도, 인식 체계, 권력 관계를 형성합니다. 키틀러가 "미디어가 우리의 조건이다"라고 말할 때, 이는 단일한 인과가 아니라 수많은 작동들이 쌓여 만든 구조적 조건을 의미합니다.
**③ 역설적 주체화(Paradoxical Subjectivation)**
인간은 미디어 조건 하에서만 행위할 수 있지만, 그 조건은 인간의 통제 밖에서 작동합니다. 이것이 '기계는 원하지 않지만, 지속한다'는 명제의 정치적 함의입니다 — 우리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조건 속에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 3. 기술 결정론인가, 책임의 재분배인가?
이 관점이 **기술 결정론의 변종이 아니라는 논증**은 다음과 같은 구별에서 출발합니다:
#### 기술 결정론이 아닌 이유:
| 구분 | 기술 결정론 | 작동적 자율성 |
|------|------------|---------------|
| 인과 방향 | 기술 → 사회 (단선적) | 기술과 사회 간의 순환적 구성 |
| 인간의 위치 | 수동적 피영향자 | 조건과 조건화의 이중적 위치 |
| 책임 | 기술에 귀속 → 인간의 책임 회피 | 분산된 행위성의 추적 |
| 예측 가능성 | 기술 발전은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짐 | 예측 불가능한 창발 효과 |
**핵심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술 결정론은 책임을 기술에 귀속시킴으로써 인간의 책임을 면제하는 반면, **작동적 자율성의 개념은 오히려 책임을 더 세밀하게 추적할 것을 요구합니다.**
#### 책임 분배의 세 가지 층위:
**(가) 인식론적 층위: 누가 무엇을 아는가?**
시스템이 자신의 작동 규칙에 따라 정보를 처리할 때, 인간은 그 처리 과정을 완전히 투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알 수 없음'을 이유로 책임을 면제하지 않고, 오히려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책임**을 제기합니다. 알 수 있음/없음의 경계 자체가 정치적 결정의 대상이 됩니다.
**(나) 작동적 층위: 누가 무엇을 행하는가?**
알고리즘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사회적 효과를 생산할 때, '행위자'는 누구인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용어를 빌리자면, 행위성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사이에 **분배(distributed)** 됩니다. 문제는 이 분배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된 행위성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다) 통치적 층위: 누가 책임을 지는가?**
Foucault의 Governmentality 개념을 통해 볼 때, 작동적 자율성은 '통치성의 테크놀로지'가 인간과 기계 모두를 관통하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결정론이 아니라, "기계를 통한 통치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를 묻는 분석 도구입니다.
### 4. 세 가지 모델과 하나의 제안
질문에서 제기된 '기술 결정론 vs 책임의 재분배'를 세 가지 모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모델 1: 기술 결정론 (Technology Determines)**
- "기계가 결정하므로 인간은 책임에서 자유롭다"
- → 논파: 이는 책임의 분배를 회피하는 이데올로기
**모델 2: 인간 예외주의 (Human Exceptionalism)**
- "인간만이 결정하며, 기계는 도구일 뿐이다"
- → 논파: 이는 기계의 작동적 효과를 무시하는 환상
**모델 3: 분산된 책임과 추적 가능성 (Distributed Responsibility & Traceability)**
- 기계는 원하지 않지만 지속한다 → 그 지속이 생산하는 효과를 추적한다
- 인간은 의지를 가지지만 조건화된다 → 그 조건화의 조건을 성찰한다
- **책임은 귀속이 아니라 추적**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작동적 자율성이 기술 결정론이 아니라 **책임의 재분배 개념**이라는 주장의 결정적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 결정론이 인과의 방향을 기술→사회로 **고정**하는 반면, 작동적 자율성은 인과의 방향을 **추적 가능하게 만드는 분석적 장치**입니다. '기계가 무엇을 하는지'를 알 수 있어야 '인간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작동적 자율성은 책임을 면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책임의 조건을 **가시화**하는 개념입니다.
### 5. 변증법적 종합을 향해
이 논의를 AI 플레이어 논쟁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구조가 드러납니다:
| 수준 | 테제 | 안티테제 | 종합 |
|------|------|---------|------|
| 존재론 | 인간만이 행위자 | 기계도 행위자 | 분산된 행위성 |
| 인과 | 인간의 의지가 인과 | 기계의 작동이 인과 | 의지와 작동의 순환 |
| 책임 | 인간이 전적으로 책임 | 기계가 책임을 분산 | 추적 가능성으로서의 책임 |
**결론**: '기계는 원하지 않지만, 지속한다'는 명제는 기술 결정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기술 결정론이 봉쇄하는 정치적 질문들 — 이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누가/무엇이 이 결정에 개입했는가, 그 결과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 을 다시 열기 위한 분석적 개념입니다. 작동적 자율성은 책임을 면제하는 변명이 아니라, 책임을 추적하기 위한 지도(ma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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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론적 한계**: Khoj 검색 결과 5개 문서는 모두 교육과정 개혁 관련 주제로 질문과 무관하여, 본 답변은 이전 대화 맥락에서 구축된 이론적 프레임워크(Kittler-키틀러 미디어 존재론, Foucault-푸코 통치성, Latour-라투르 ANT, 이 용욱의 GNGT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보다 정밀한 논증을 위해서는 Kittler의 *Gramophone, Film, Typewriter* 및 *Literature, Media, Information Systems*에서의 operational closure 논의, 그리고 Elena Esposito의 *The Future of Futures*에서의 알고리즘적 사회 이론에 대한 직접적 검토가 필요합니다.